[봉축 특집 인터뷰]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   2022-05-10 (화) 17:11
선원수좌선…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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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며 일하며…“오로지 요익중생하라”
시줏물 받기를
쇠녹인 물마시듯 해야 해요.

시줏물 값어치를 안하면
큰 죄를 짓는 겁니다.



지난 3월 종단의 종정에 오른 중봉 성파 대종사는 예나 지금이나 일하며 공부하며 늘 여여한 일상을 맞고 있다. 번다한 세간사와 비켜서 있는 듯하다. 법문이 아니라 부탁이라며 “오로지 기신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주 기자
불기 2566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를 알현하러 가는 길, 영축총림 통도사 산중의 논은 이미 쟁기질이 끝났다. 논에 물을 대고 고랑을 낼 준비가 한창이다. 이팝나무가 꽃을 다 피우기 전 통도사 스님들은 모내기에 나설 것이다. 농사 또한 수행의 일부. 일년 중 가장 힘든 때라지만, 승복을 걷어붙이고 선농의 수행에 나서는 스님들의 모습은 참으로 정겹다.

서운암 경서원에서 천연염색 작업이 한창이던 성파 종정예하는 일손을 멈추고 불교신문 사장 현법스님과 주간 오심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지난 3월 종단의 최고 어른 자리에 오른 뒤에도 여전히 전통문화예술을 현창하고자하는 불사에 매진하는 일상은 바뀌지 않았다. 서운암의 평온한 일상은 종단의 새로운 종정예하를 맞는 세간의 관심과는 한걸음 떨어져 있었다.

성파 종정예하는 이미 정해진 약속인데도 “달리 할 말도 없는데 뭐하러 여기까지 왔느냐”며 손님들을 맞았다. 서운암을 넘어 멀리 양산시내까지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서원 앞에서 전통문화예술이 화제에 올랐다.

“국가에서 문화예술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불교계도 문화예술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노력하지 않으면 국가에도 이렇게 해달라 할 수가 없어요. 오랜 경험으로 볼 때 그렇더란 말이지요.”

시선은 멀었다. 누군가를 탓함도 아니요, 책임을 묻는 투도 아니었다. 성파 종정예하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말을 낮추는 법이 없다. 자연스럽게 차실로 이끌었다.

“전통문화에서 80, 90%는 불교문화입니다. 불교문화를 빼고는 말을 할 수가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굳이 불교문화라고 고집할 필요도 없습니다. 불교문화라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 국한시키는 것 아니겠어요?”

옻칠, 민화, 염색, 야철, 서예, 다도, 시조문학 등 전통문화 분야에서 손을 대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특출나게 잘 해서라기 보다는 관심이 가고 좋아서다. 좋다고만 할 수도 없는 일, 신념이 담겨 있다. 전통을 버리면 오늘이 없고, 오늘이 없으면 미래도 없음을 평생의 공부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잘 알고 시작한 일이 아니기에 배움의 수행이 뒤따랐다. 분야의 장인과 대가들을 만나러 다니고,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찾아다니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팔십 평생 가르침을 구하는 만행의 삶이지 않은가.

평생의 공부를 어떻게 세상에 내놓을까 고민한 성파 종정예하는 얼마 전부터 재단법인 전통문화예술연구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분야별로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전통문화의 원류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자 한 취지다. 전통문화에서 불교문화를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결국 귀착지는 불교가 될 것이다. 모두가 신뢰할만한 전문가들의 체계적인 연구결과로 증명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다.

성파 종정예하는 지난 3월 종정 취임 때 이전의 종정 스님들과 다른 일상의 언어로 법문해 화제를 낳았다. 성파 종정예하의 법은 늘 가까이 있다. 그것은 ‘평생의 학인’이라는 스님의 삶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방의 선원에서 얻은 견처에 일상의 언어가 더해지며 더 친숙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젊은 시절 제방선원을 다닌 공부는 통도사 서운암을 일구며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삶으로 구현됐다. 평상심시도는 조계종 제9대 종정을 지낸 은사 월하스님의 수행가풍이다.

“항상 무뚝뚝하고, 고집 센 어른이었어요. 하고자하는 일이나 신념이 투철하니까 남들이 얘기해봐야 안움직여요. 은사 스님이 법을 인가하면서 ‘인인각지자등화 기대일월심전로(人人各持自燈火 豈待日月尋前路, 모두가 각기 자신의 등불을 가졌거늘 어찌 해와 달을 기다려 앞을 찾겠는가)’라고 했어요. 차마시고 왔다갔다 하시면서 늘 하시는 말씀이지만 굉장한 가르침이란걸 단박에 알아차렸습니다.”

월하스님은 도가 있으면 자연히 풍기는 것, 설치고 돌아다닐 것 없다고 항상 말씀했다. 유사자연향(有麝自然香)이면 하필당풍립(何必當風立)이라. ‘사향을 지녔으면 저절로 향기가 저절로 나는 법인데, 어찌하여 꼭 바람을 맞고 서있겠는가?’라는 명심보감의 구절이 늘 뒤따랐다.

성파 종정예하가 내린 ‘상요청규(常要淸規)​ 필수화목(必須和睦)​ 보리군생(普利群生)’ 교시에도 영축총림을 지탱해온 대종장(大宗匠)에게 면면히 내려온 수행가풍이 담겨 있다. ‘상요청규 필수화목’은 영축총림 일주문 앞에 씌인 구하 천보대종사의 글귀다. 방포원정상요청규(方袍圓頂常要淸規)​ 이성동거필수화목(異姓同居必須和睦)​. 가사 입고 삭발하였으니 항상 규율을 따라야 하고 각기 다른 성(姓)을 가진 이들끼리 모여 사니 반드시 화목해야 한다는 의미다.

“씨줄과 날줄을 연결해서 천을 만듭니다. 이게 어그러지면 엉망진창이 되고 맙니다. 대중생활을 근간으로 하는 출가의 삶이 씨줄과 날줄 같은 것이에요. 그래서 상요청규해야 한단 말입니다.”

쉽게 비유법문을 많이 하는 성파 종정예하의 면모가 가감없이 드러난다. 필수화목은 도자기로 설명했다.

“도자기를 만들어도 흙에 물을 섞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어요. 흙을 그냥 두면 바람에 날리고 난리가 아니에요. 그냥 먼지일 뿐입니다. 물이 들어가서 반죽을 해야 비로소 도자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화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리에 앉으면 팔만사천 번뇌가 죽 끓듯이 끓습니다. 화두 하나를 가지고 물을 부어 반죽해서 한 덩어리를 만드는거에요. 화목 아니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말선초 함허 득통선사가 ‘춘화화직지(春花和織地) 운정월만천(雲淨月滿天)’이라 했거든요. 봄바람 부나니 꽃들이 땅에 수를 놓고 구름 걷히니 달빛이 하늘 가득하도다. 그래서 필수화목이라요.”

성파 종정예하는 반드시 상요청규 필수화목하고, 궁극적으로 보리군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리군생은 자리이타입니다. 자리이타에 다 들어 있습니다. 수행자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요익중생을 안하면 안됩니다. 기여도가 없으면 되나요. 수행자는 시주은혜를 받고 삽니다. 시줏물 값어치를 안하면 큰 죄를 짓는 겁니다. 시줏물 받기를 쇠 녹인 물마시듯 하라는 말이 있거든요. 시줏밥 먹는다는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성파 종정예하는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라는 평생 신조를 꺼냈다.

“일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면 뭐하나요. 그거 큰일이거든요. 우경서투량(牛耕鼠偸糧)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는 밭을 갈고 쥐는 양식을 도둑질해 먹는다는 뜻입니다. 쥐가 너무 많으면 되겠습니까. 일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면 쥐입니다. 뭐를 하든 자기 값어치를 해야지요.”


성파 종정예하는 절을 도심으로 옮길 수 없으니 도심의 사람들을 절로 불러들이기 위해 통도사 서운암에 야생화와 이팝나무를 가득 심었다고 한다. 이 또한 요익중생의 방편이다.
“신심은 봄이 만곡을 키우는 것과 같지요”

노력은 적게 하고
수확은 많이 얻으려고 하면 되나요?
부처님 말씀을 믿고 행하면 모든게 해결 됩니다.
오로지 기신심(起信心)이라요.

야생화가 흐드러진 때의 서운암은 운치가 넘친다. 성파 종정예하는 통도사 주지를 내려놓자마자 그 많은 야생화를 서운암에 심었다. 절을 도심으로 옮길 수 없으니 도심의 사람들을 절로 불러들이고자 했다. 꽃을 보러오는데 불자는 오고 이웃종교인은 안올리 만무하지 않은가.

도자대장경을 조성해 장경각을 지으며 주변으로 이팝나무를 가득 심었다. 서운암은 보기드문 이팝나무 군락지가 됐다. 모든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성파 종정예하는 이팝나무를 보며 원래 이름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팝나무는 원래 이밥나무, 조팝나무는 조밥나무에요. 하얀 꽃이 한가득 핀 모습이 쌀밥 같다고 해서 이밥나무라고 했거든요. 옛날에 모내기를 이밥나무 꽃이 피기 전에 다 못하면 나락이 안익어요. 모내기할 때는 작년 양식은 다 떨어지고 일은 가장 힘들 때라서 이밥나무 꽃 같은 쌀밥 먹게 해달라고 해서 농요를 부른다 아닙니까. 농요가 흥이 나고 즐거워서 하는게 아니고 시름을 달래면서 하는거라요.”

야생화와 이팝나무 덕분에 서운암은 코로나가 한창일 때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세상을 비켜서 있는 듯하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사람들의 삶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면면이 금방 드러났다. <벽암록>의 체로금풍(體露金風, 가을바람이 부니 잎을 떨군다)은 이럴 때 쓰는 화두다.

성파 종정예하는 “걱정할 것 없다”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대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변역하는 겁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주역을 선의 입장으로 해석한 <선가주역>으로 대신합니다. 사주관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대자연의 진리를 담은 내용입니다. 수시변역(隨時變易)하여 이종도(以從道)라. 수시로 변역하되 도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지금 시대의 표현으로 하자면, 코로나가 아무리 심해도 멈출 날 있고 태풍이 아무리 심하게 와도 비바람 그칠 날이 있고 가뭄 역시 그렇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대자연의 흐름이기 때문에. 조심은 하되 그렇게까지 놀랄 필요는 없어요. 약으로도 해결한다고 하지만, 시간이 해결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이런 때가 가면 앞으로 좋은 시대가 옵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도 성파 종정예하는 요즘의 사람들이 안타깝다. 근기에 맞춰서 일상의 언어로 법을 설해도 소용이 없다. 다시 오월동주(吳越同舟) 고사로 이야기를 풀었다. 중국 사기에 나오는 오월동주는 원수 사이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는 말로, 서로 원수라도 강을 건너는데 풍우를 만나게 되면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돕게 된다는 의미다.

“화소(花笑), 접무(蝶舞), 조가(鳥歌)라고 하죠. 꽃이 미소짓고, 나비가 춤추고, 새가 노래한다고 합니다. 새는 전부 노래한다고 하는데, 새 중에 제비는 유일하게 말을 합니다. 그래서 제비는 연가(燕歌)라고 하지 않고 연어(燕語)라고 해요. 연어에 이런 말이 있어요. 잘 들어보세요. 지지자지지(知之者知之) 부지자부지(不知者不知) 시지지도야(是知之道也)라.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이 도리라는 뜻이에요.”

이것을 성파 종정예하는 제비 말로 바꾸어 가늘고 빠르게 읊었다. “지지자지지 부지자부지 시지지도야. 짹짹짹.” 좌중을 곧 웃음으로 이끌면서도 법문 속에 가시가 솟았다. “다들 나만 잘 났다고 하니 제비 말이 필요한 시대인기라.”

출가 후 가장 먼저 접하는 경서가 <초발심자경문>이다. 성파 종정예하는 60년 전 배웠던 초발심자경문 구절을 인용했다.

“아여양의(我如良醫)하야 지병설약(知病設藥)하노니 복여불복(服與不服)은 비의구야(非醫咎也)라. 나는 어진 의사와 같아 병을 알고 약을 주지만, 먹고 안먹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 우여선도(又如善導)하야 도인선도(導人善道)호대 문이불행(聞而不行)은 비도과야(非導過也)니라. 또 훌륭한 길잡이와 같아 바른 길로 사람을 인도하지만, 길을 따르고 안 따르는 것은 길잡이의 허물이 아니다. 부처님 말씀이 약인데 잘 믿지 아니하고 복용하지 않아요.”

부처님이 길을 일러주었는데도 따르지 않은데 무슨 말이 필요하느냐는 반문과 같다. 듣는 이들이 이미 알고 있으나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강조한 것이 행(行)이다.

“옛 선지식들이 많이 강조한 말씀이 ‘비지지난 행지난(非知之難 行之難)’입니다.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행하는 것이 어렵다. 지금 시대에는 다들 지식수준이 높아서 나보다 더 많이 압니다. 모르는게 아니고 행하지 않는게 문제 아니겠어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자들에게 특별히 일러줄 법문을 청했다. 성파 종정예하는 헛웃음만 지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말을 안했어요. 나부터 하나, 못하나가 문제인데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겠습니까. 한마디 해야 한다고 하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네. 문제를 아직 못풀었습니다.”

성파 종정예하는 차나 한잔 마시라고 권했다. 이내 “굳이 말을 해야 한다면 딱 하나 부탁하고 싶은게 있다”고 운을 떼더니, 뜸을 들였다. 법문이 아니고 부탁이라며 신심을 강조했다.

“부처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되거든요. 믿고 행하면 안될 일이 없어요. 그런데 요즘 노력은 적게 하고 수확은 많이 얻으려고 하더라구요. 스님네들이고 불자들이고 가릴 것 없이 신심 하나면 됩니다. 신심만 일으키면 다 되는거라.”

성파 종정예하는 마지막 싯구를 읊으시더니 자리를 일어섰다.

“기신심(起信心)은 춘경만곡(春耕萬穀)이라. 신심을 일으킨다는 것은 봄이 만곡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성파 종정예하는 불교신문사 사장 현법스님과 주간 오심스님을 맞으며 “요즘 불교신문을 보면 기분이 좋다”며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는 것이 최고의 공부”라고 당부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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