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현봉스님 임인년 하안거 결제법어   2022-08-24 (수) 10:16
선원수좌선…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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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야 혜각(瑯琊 慧覺)선사에게 장수(長水) 좌주(座主)가 묻기를

“본래 그렇게 청정한데 어찌해서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겼습니까?(淸淨本然 云何忽生山河大地)”하니, 낭야 선사가 큰 소리로 말하기를 “본래 그렇게 청정한데 어찌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겼겠는가?”하니, 좌주가 그 말에 크게 깨달았다.

낭야선사와 장수 좌주와의 문답은 능엄경에 나오는 세존과 부루나의 문답과 같다.

부루나가 부처님께 질문하기를 “청정본연(淸淨本然) 하거늘 어찌하여 문득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생겼습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부루나여, 그대가 말한것과 같이 청정본연한데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겼겠는가? 그대는 내가 늘 ‘성각(性覺)이 묘명(妙明)하고 본각(本覺)이 명묘(明妙)하다’고 하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하시었다.

청정본연한 바탕에서 보면 산하대지의 차별도 그대로 청정본연한 것인 줄 알 터인데, 차별된 자리에서 보기 때문에 그런 의문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세존은 그 물음을 되받아 대답하셨던 것이다.

조선 명종 때에 불심깊은 문정왕후가 과거제도인 승과(僧科)를 부활시켰다. 그때 보우(普雨:1509~1565)선사가 승과의 선장(選場)에서 “청정본연한데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겼는가?”라는 문제를 제시했는데, 휴정(休靜)스님이 나서서 답하기를 “본래 청정하기 때문입니다(淸淨本然故)”라고 대답하였으니, 참으로 절창(絶唱)이었다. 휴정은 바로 서산대사이니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의 산하대지가 혼탁해졌을 때 왜구들을 물리쳐 이 산하대지를 청정하게 하신 분이다.

淸淨本然山河空 본래부터 청정하여 산하가 공했는데

這裏那堪得圓通 그 속에서 어떻게 원만하게 통하리오.

想如靈山消息絶 영산회상 소식이 끊어졌다 여겼더니

庭中梅花笑春風 뜰 앞의 매화가 봄바람에 웃고 있네.

해인사 장경각 입구에는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라는 두 구절의 주련이 있다. ‘원각의 도량이 어느 곳이냐? 지금 현재의 나고 죽음의 일상생활 자체가 바로 원각도량이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내신 효봉큰스님의 은사이신 금강산 도인 석두(石頭:1882~1954)선사께서 말씀하신 것을 남전(南泉: 1868~1936)스님이 글씨 써서 새겨 걸어둔 것이다.

법상(法常: 752~839)스님이 마조(馬祖)선사를 찾아 묻기를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니, 마조선사는 “바로 마음이 부처다(卽心卽佛)”하였다.

법상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는 대매산(大梅山)으로 들어가 밖을 나가지 않고 살았다.

뒤에 마조선사는 한 스님을 시켜 대매산의 법상을 찾아가 묻게하였다.

“스님은 마조스님을 만나보고 무엇을 얻었기에 이 산에만 머물고 있습니까?”

“마조스님이 나에게 ‘바로 마음이 부처다’하였기에, 여기에 머물고 있다”

“마조스님의 법문이 요즈음은 좀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는가?”

“요즈음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고 하십니다”

“그 늙은이가 사람을 자꾸 혼란스럽게 하는구나. 그 분이야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하거나 말거나 나는 오직 ‘마음이 바로 부처(卽心卽佛)’일 뿐이다”

그 스님이 돌아와 마조선사에게 말씀드리니, “매실(梅實)이 잘 익었구나?” 하였다.

지난 동안거 결제 때 동산 양개선사의 무정(無情)설법에 대한 인연을 말하였다.

동산이 운암을 찾아가서 무정설법에 대해 묻기를 “무정의 설법은 어느 어떤 경전에 있습니까?”하니, “아미타경에 보면 ‘물과 새와 숲에 나무들이 다 함께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한다’고 말했지 않았는가?”

동산스님이 여기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부처님은 아무리 오탁악세라도 부처의 경계로 수용하게 되고 돼지의 눈에는 아무리 아름다운 보배라도 축생의 경계로 수용하게 된다. 이 세상은 수용하는 각자의 몫이다.

화엄경에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배가 허공에 가득 쏟아져도 중생들은 각자의 그릇 따라 이익을 얻게된다’고 했다.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은 청정본연을 그처럼 무정물로 장엄하게 되니 무정물이 무정이 아니라 그대로 화신이다.

하나의 풍경도 제각기 카메라 초점의 조정에 따라 다른 사진이 되는 것이다. 초점이 사라지면 있는 그대로 보게된다.

그래서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은 라자색선백 공점이엄지(空點以嚴之)라 하였다.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걸 텅 비우고 바라보면, 보는 주관이나 보여지는 대상인 객관이 둘이 아닌 것이다.

그 뒤에 동산은 개울을 건너면서 물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보고 크게 깨달아 지은 게송을 지난번에 소개하였다.

切忌從他覓 남을 따라 찾지 말라.

迢迢與我疎 나와 더욱 멀어진다.

我今獨自往 내가 이제 홀로 가며

處處得逢渠 어디서나 그를 만나네.

渠今正是我 그는 지금 바로 나요

我今不是渠 나는 이제 그 아니다.

應須恁麽會 이와 같이 알아야만

方得契如如 여여(如如)하게 맞으리라. 하였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난 해제하는 오늘은 그렇지 않다.

“남을 따라 찾지 말라.

나와 더욱 멀어진다.

내가 이제 홀로 가며

어디서나 그를 만나네.

그는 지금 바로 나이며

나는 바로 그가 아니랴?

이와 같이 알아야만

여여하게 맞으리라”

결제 때 ‘그는 지금 나인데, 나는 이제 그가 아니다. 이와같이 알아야만 여여하게 맞으리라’했다.

그러나 해제하는 지금은 ‘그는 지금 나이며 나는 바로 그가 아니랴? 이와같이 알아야만 여여하게 맞으리라’고 말한다.

여기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같은가? 다른가?

아니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대중들은 이제 해제를 하고 봄바람 속에 매화가 피는 동서남북을 홀로가며 ‘늘 어디서나 그것을 만나면서’ 잘 살펴보시기 바란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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