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뭣꼬?] 고통에서 벗어남   2022-04-05 (화) 10:29
선원수좌선…   388



32.생각이전 자리에 앉아라

  

고통에서 벗어남

 

그대가 깊은 반야의 경지를 체득하려고 한다면

먼저 몸과 마음이 공함을 비춰 보아라.

그러면 일체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느니라.

 

- 반야경-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살면서 겪고 있는 괴로움은 대부분 집착과 애착에서 비롯된다. 모든 집착과 애착은 나로부터 생긴다. 나로부터 생긴 나에 대한 집착을 아집이라 한다. 아집은 내가 있음을 전제하기에 일어나는 감정이다. 내가 있고서야 나에 대한 집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없다면 나에 대한 집착은 토끼 뿔이나 거북 털이 될 수 밖에 없다.

 

부처님이 자아라고 할 만한 내가 없다는 뜻의 무아를 주장한 것은 내가 있다는 망집을 깨기 위함이다. 내가 있는 한 아집을 깰 수 없다. 내가 없다는 무아를 통해서만 아집으로부터 생기는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무아임을 여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무아란 나에게 자아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동시에 무아란 집착할 만한 자아가 없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 어리석은 중생은 무아라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나에 대한 집착을 반복적으로 생산하면서 괴로워한다.

 

중생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오온이다. 부처님은 이른바 색 · · · · 식의 오온을 나라고 착각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오온이 공하다는 말은 인식주체(육근: 안이비설신의)와 객관대상(육진: 색성향미촉법)에 실다운 모습이 없어 공하기 때문에 주객의 접촉으로 이루어진 인식활동(육식: 안식 내지 의식) 또한 실다운 모습이 없어 공하다는 말이다.

 

즉 오온, 십이처, 십팔계 가 공하므로 그 어디에도 자아라고 할 것이 없으며, 자아가 없기에(人無我) 인식 주체가 공이며, 경계 또한 실체가 없어(法無我) 공하기에 객관 대상을 취해 집착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어제 밤 꿈속에서는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경계가 분명하지만, 오늘 아침 꿈을 깨고 보면 꿈속에서의 나와 일체 경계가 환(허깨비)에 불과한 것이다. 환이란 실제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허깨비와 같이 실체가 없어 텅 빈 것이므로 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중생은 실체가 없는 몸과 마음(생각)을 나라고 착각하여 몸과 마음에 대한 애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요소로 이루어진 허망한 것이며, 마음은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는 요소로 이루어진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인 오온이 공(그림자)함을 밝히고, 오온이 공함을 비추어 보고 일체의 고통과 액난을 건넌다고 설하는 것이다.

 

몸이 부처요, 마음이 부처다. 그러나 부처라는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몸과 마음에 대한 집착으로 살아가면 몸과 마음이라는 허깨비에 속아서 주체적인 삶을 살 수가 없다. 몸과 마음이 무상하고 무아임을 체득하면 육신과 중생심이 그대로 법신이 되고 불심이 되는 것이다. 몸은 무상하다. 마음도 무상하다. 무상하기에 연기되어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기에 무아이다. 무아이기 때문에 나에 대한 집착이 허깨비에 불과하다. 아집이 없으므로 괴로움도 사라진다. 괴로움이 사라지면 열반이다. 이것이 부처님이 무상. . 무아를 설한 이유이다.

 

*내가 없으면 내 것도 없다. 그런데 나를 세우고 내 것을 달고 다니니 번거롭기 짝이 없구나.


32호 <禪><생각이전 자리에 앉아라>월암스님 
참선이 제일이라네